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한국판 슈퍼히어로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자윤이 마지막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2018년 박훈정 감독이 내놓은 영화 〈마녀〉는 그렇게 저에게 '사람은 절대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명제를 액션으로 증명해버린 작품이었습니다. 신인 김다미 배우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인체실험 윤리와 가족의 의미까지 건드리는 묵직한 문제작입니다.
자윤이라는 캐릭터 —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돌려봤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윤은 처음 미스터 최와 마주치는 기차 시퀀스에서 이미 상대를 알아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감독이 직접 밝혔듯, 그 장면은 "자윤이 저 멀리 미스터 최를 보면서도 못 본 척하며 관계까지 속이는 신"입니다. 1회차에서는 그냥 우연한 만남으로 보이지만,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자윤의 모든 행동이 다르게 읽힙니다.
이 영화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바로 2세대 실험체(Second-generation Subject)입니다. 여기서 2세대 실험체란, 뇌 수술로만 능력을 부여받은 1세대와 달리 유전자 단계부터 조작되어 태어난 존재를 의미합니다. 자윤이 바로 그 2세대에 해당하고, 1세대인 미스터 최나 성사장과는 태생적으로 능력의 차원이 다릅니다. 극 중 닥터 백이 "1세대 시제품하고는 차원이 완전히 달랐지"라고 말하는 대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캐릭터 설계에서도 이러한 층위가 촘촘하게 쌓여 있다는 것입니다. 닥터 백 캐릭터는 초기 시나리오에서는 남성이었는데, 자윤에게 집착하는 감정선이 여성 캐릭터에 더 어울린다는 판단으로 바꾸고 조민수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귀공자의 경우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 뛰어난 자윤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닥터 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내면에 쌓아온 인물로 설계되었습니다. 최우식 배우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손톱을 깨무는 버릇을 만들었고, 감독이 이를 보고 캐릭터화시켰다는 일화는 캐릭터의 심리를 얼마나 세밀하게 구축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저도 실제 생활에서 처음엔 무뚝뚝하고 가까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함께 일을 하면서 전혀 다른 면을 보여준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과 자윤의 이중성이 겹쳐 보이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사람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영화임을 느꼈습니다.
- 자윤은 영화 내내 모든 등장인물과 관객을 동시에 기만하는 구조로 설계된 캐릭터다
- 2세대 실험체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존재로, 1세대와 능력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 귀공자의 손톱 깨무는 버릇은 최우식 배우의 애드리브에서 캐릭터로 공식화되었다
- 닥터 백은 원래 남성 캐릭터였으나, 집착의 감정선을 살리기 위해 여성으로 변경되었다
촬영비화 — CG와 현장의 경계가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가장 예상 밖이었던 부분은 CG(Computer-Generated Imagery, 컴퓨터로 생성한 디지털 합성 이미지)의 범위였습니다. 여기서 CG란 실제로 촬영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장면을 디지털로 제작하거나 실사 위에 덧씌우는 기술을 말합니다. 빗방울이 창틀에 맺히는 장면, 차 안에 서린 습기, 호텔 밖 풀샷, 파주 로케이션에 심어놓은 도시 배경까지 — 언뜻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디지털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광천역 기차 장면에서 비가 와야 하는데 찍으려고만 하면 비가 그쳐서 CG로 비를 심었고, 창틀 빗방울까지 후반 작업으로 추가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진짜 빗속에서 찍은 거라고 100퍼센트 믿었거든요. 반대로 연구소 복도 시퀀스는 대진대학교 로케이션을 그대로 활용했고, 광천 목장 배경은 구레의 지리산 치즈랜드 인근 실제 목장에 미술팀이 데코를 얹은 것입니다.
로케이션(Location Shooting)이란 세트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서 촬영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 영화는 세트와 로케이션, 그리고 CG를 매우 정밀하게 섞어 사용했습니다. 화원 신에서 실제로 불을 지르고 CG로 화염을 더 풍성하게 만든 것, 귀공자가 벽을 타는 장면에서 최우식 배우의 신체를 3D 스캔해 디지털 캐릭터로 만든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출처: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마녀〉는 약 40억 원 규모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제작비 대비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후반 작업 CG에 상당 비중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소 세트는 첨단 연구소가 아닌 창고처럼 보여 제작진이 실망했지만, 미술팀과 CG팀이 후반 작업으로 만족스러운 그림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이 정도 그림을 뽑아냈다는 점은 제가 보기에도 상당한 성과입니다.
연출 의도 —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영화의 스타일리시한 액션만 보고 오락영화로 소비할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이 가장 공들인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자윤에게 건네는 대사입니다. "어디서 마녀 새끼 들려다 키운 게 아닌가 싶어 솔직히 좀 무서웠다. 후회했어. 널 거두는 게 아닌데. 어디로 보낼 수만 있으면 보내고도 싶었어. 엄마가 절대 안 된다. 우리가 이뻐라. 이뻐라 기우면 이쁜 애가 된다고." 감독과 배우 모두가 이 대사를 영화 전체에서 제일 좋아한다고 했고,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라고 밝혔습니다.
저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과 지내면서 결국 사람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존재라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윤의 능력을 알고도, 두려움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도, 결국 "엄마가 이쁜 애가 된다고 했다"는 말로 귀결되는 이 장면은 짧지만 영화 전체를 받쳐주는 감정적 기둥입니다.
바이오에틱스(Bioethics), 즉 생명윤리란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 존엄성과 윤리적 경계에 관한 학문 분야입니다. 〈마녀〉는 인체 실험과 유전자 조작을 소재로 삼으면서 이 생명윤리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위에서 결과가 두려워지자 실험체들을 폐기하라는 결정을 내리는 장면은 과학적 성취 앞에서 얼마든지 인간이 도구화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유전자 편집 기술의 윤리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을 만큼(출처: WHO Human Genome Editing), 이 문제는 현실에서도 이미 뜨거운 논쟁 중입니다.
엔딩 이후 장면에서 닥터 백의 쌍둥이 동생이 들여다보는 자료에는 아직 살아있는 실험체들이 다수 등재되어 있고, 등장하는 소년은 인간에게 통제되는 실험체로 보입니다. 박훈정 감독은 총 3부작을 염두에 두고 이 시리즈를 설계했으며, 영어 제목 자체가 시리즈 연속성을 암시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2편에서 더 많은 2세대 실험체가 등장하고 조직 간 충돌 구도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마녀〉에서 자윤은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나요?
A. 감독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기차에서 미스터 최를 마주치는 장면부터 자윤은 이미 상대를 알아보고 있었으며, 이후 귀공자 일행을 따라가는 것까지 포함해 영화 내 모든 행동이 계획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감독은 이 부분을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반전 구조로 설계했다고 밝혔습니다.
Q. 1세대 실험체와 2세대 실험체의 차이가 뭔가요?
A. 1세대 실험체는 뇌 수술을 통해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이고, 2세대는 유전자 자체를 조작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이 때문에 자윤 같은 2세대는 미스터 최 같은 1세대와 능력의 층위가 근본적으로 다르며, 닥터 백이 제조하는 주사도 2세대에게만 필요한 억제 장치입니다.
Q. 〈마녀〉에서 CG가 가장 많이 쓰인 장면은 어디인가요?
A.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광천역 빗속 장면의 빗방울, 차 안 습기, 귀공자가 벽을 타는 장면의 디지털 캐릭터, 파주 로케이션에 합성한 도시 배경, 화원 신의 화염 강화 등이 모두 CG입니다. 실사처럼 보이는 장면 상당수가 후반 작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두 번 보면 더 놀라게 됩니다.
Q. 영화 〈마녀 2〉는 언제 나오나요?
A. 박훈정 감독은 총 3부작으로 시리즈를 구상했습니다. 제 지식 기준으로는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이 2022년에 개봉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3부작의 마지막 편은 아직 제작 소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최신 정보는 영화진흥위원회나 공식 배급사 채널에서 확인하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Q. 귀공자 캐릭터의 초기 설정이 백발이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귀공자는 초기에 백발 설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최우식 배우가 캐나다 국적이라는 설정과 맞물려 외국인 느낌을 더 부각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모습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결론
〈마녀〉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속이는 영화'입니다. 장르적으로는 노아르 액션이지만, 구조적으로는 관객을 자윤처럼 속이도록 설계된 작품입니다. 1회차에서 보이는 것과 2회차에서 보이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반복 감상의 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아버지의 대사 하나로 수십 분의 액션 시퀀스를 감정적으로 수렴시키는 연출은, 제가 봐온 한국 장르 영화 중에서도 꽤 인상적인 축에 듭니다. 인체 실험과 생명윤리라는 무거운 소재를 오락적 문법으로 소화하면서도 주제를 잃지 않은 점에서 단순 소비용 영화로 보기에는 아깝습니다. 아직 시리즈를 보지 않으셨다면 1편을 먼저 꼼꼼히 두 번 보고 2편으로 넘어가는 순서를 권합니다. 복선의 밀도가 생각보다 촘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