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정말 그 아이의 문제일까요? 2014년 독립영화 <거인>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 영재는 신발을 훔치고, 친구를 의심받도록 내버려 두고, 경찰에 신고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영재를 나쁜 아이라고 단정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사정이 너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절박함 — 꿈이 아닌 탈출구로서의 신부
영화 속 영재는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처음엔 그냥 종교적 소명이겠거니 했는데, 사정을 알고 나면 그게 아니었습니다. 신부 양성 기숙학교에 들어가면 그룹홈 원장의 눈치를 볼 필요도, 지긋지긋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영재에게 신부라는 꿈은 성소(聖召), 즉 신으로부터 받은 부름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출구였던 셈입니다.
저도 비슷한 심리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집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되자, 저는 바깥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는 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겉으로는 목표를 향한 노력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영재의 선택이 그래서 낯설지 않았습니다.
영재가 그룹홈에 남기 위해 쓰는 전략도 눈에 띕니다. 그는 원장 부모에게 항상 싹싹하게 굽니다. 이건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 가깝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순응적 대처(fawn response)'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순응적 대처란 위협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는 방어 행동을 의미합니다. 학대나 불안정한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반응입니다(출처: 미국정신의학회(APA)).
그런 영재가 같은 처지의 범태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결국 경찰에 신고까지 한 장면에서 저는 솔직히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영재만 비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그 행동이 옳았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행동했을 때 영재가 치를 대가, 즉 시설에서 쫓겨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 이기적인 선택을 단순히 나쁜 품성으로 환원하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생존 — 어른 없는 세계에서 혼자 버티는 법
영재가 신발을 훔쳐 팔았던 이유가 처음에는 단순히 돈을 모으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선생님에게 장갑을 선물하고, 원장에게 말을 잘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것도 생존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영재는 인맥(人脈)을 관리하고 있었던 겁니다. 17살짜리가.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기댈 곳이 없다고 느낄수록 겉으로는 더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저도 힘들다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속으로만 지쳐 있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커지고, 남이 도움을 요청해도 차갑게 선을 그었습니다. 범태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던 영재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던 건 그 때문입니다.
그룹홈(group home)이라는 공간 자체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룹홈이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대규모로 수용하는 보육원과 달리, 가정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이 소규모로 공동 생활하는 가정형 보호 시설을 의미합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그룹홈은 아동 보호의 탈(脫)시설화 흐름 속에서 꾸준히 늘어왔지만, 만 18세 전후 보호 종료 이후 자립 지원 체계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영재가 나이가 찼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다녀오라는 말을 듣는 장면은 그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그 집이 얼마나 돌아가기 싫은 곳인지 알면서도 시설도 결국 그를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영재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판단 이전에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주어졌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룹홈 내 물건을 훔쳐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어른들의 신뢰를 관리하는 영재
- 도움을 요청하는 범태를 차갑게 거절하고 오히려 신고에 이용하는 영재
- 신부가 되겠다는 말로 원장의 감정을 움직이려는 영재
이 세 장면을 이어서 보면 영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생존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슬펐습니다.
어른의 책임 —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화가 났던 장면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민재를 영재에게 떠넘기려 했던 부분입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사정을 내세우며 동생을 시설로 보내자고 했고, 정작 영재가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모화(parentific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부모화란 아이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 떠맡게 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부모의 감정을 돌보거나 동생의 양육을 책임지거나 가족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드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영재가 민재에게 엄마 아빠에게 시설 얘기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다그치고, 부모에게 직접 화를 내며 "내가 책임진다"고 외치는 장면은 전형적인 부모화의 모습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그 감정을 이렇게 날카롭게 포착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룹홈 원장 부부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아이를 내보내려는 결정이 이해는 되지만, 그 결정이 영재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아이들을 품는다는 공간에서조차 일정 기준을 넘으면 내쳐지는 구조, 그것이 영재를 더 계산적이고 눈치 빠른 아이로 만든 또 다른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제 경험상, 가까운 사람의 행동 뒤에 숨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그냥 나쁜 사람으로 단정하게 됩니다. 저도 그런 실수를 해왔습니다. 누군가 차갑게 선을 그을 때 그 뒤에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보려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나중에야 그 행동이 자기 보호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영재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자꾸 그 기억을 건드렸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거인>은 실화인가요?
A. 완전한 실화는 아니지만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김태용 감독은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그룹홈에서 생활했고,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신부를 꿈꿨던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재라는 인물은 그 경험에서 태어난 캐릭터입니다.
Q. 영재가 범태를 경찰에 신고한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A.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다만 그 선택이 영재가 시설에 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영재의 행동을 나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판단 이전에 왜 그 아이가 친구를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룹홈은 보육원이랑 다른 건가요?
A. 다릅니다. 보육원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대규모로 수용하는 시설인 반면, 그룹홈은 가정 환경이 어렵지만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소규모로 함께 생활하는 가정형 보호 시설입니다. 영화 속 영재처럼 부모는 있지만 함께 살기 어려운 상황의 아이들이 주로 생활합니다.
Q. 영화 <거인>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14년 개봉한 국내 독립영화로, 국내 주요 OTT 플랫폼이나 독립영화 전용 서비스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플랫폼별 서비스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현재 제공 여부는 직접 검색해 확인하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결론
영화 <거인>은 감동적인 작품이라기보다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불편함이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영재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 안전한 어른 한 명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을 혼자 터득해버린 아이였습니다. 마지막에 동생 민재가 돈 벌어서 형이랑 둘이 살자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결국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책임지겠다고 말하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어떤 사람의 행동 뒤에는 반드시 사정이 있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차가운 선택 앞에서 사정을 보지 못하고 그냥 나쁜 사람으로 단정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행동보다 그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먼저 보려는 태도를 다시 한 번 다지게 됐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불편해도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