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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리 (외로움, 청각장애 편견, 가족 소통)

by sign3139 2026. 7. 22.

영화 나는 보리 포스트 사진

나는 보리 (외로움, 청각장애 편견, 가족 소통)

영화 〈나는 보리〉는 청각장애인 가족 안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11살 소녀 보리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감독 김진욱이 연출한 이 영화는 차이와 다양성, 그리고 가족 안에서의 소속감이라는 주제를 조용하고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만들어낸 외로움

영화 〈나는 보리〉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주인공 보리의 상황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청각장애인 가족 안에서 유일하게 청력을 가진 아이라는 설정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 가족을 돕는 비장애인 아이'의 서사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반대 방향의 감정에 주목합니다. 보리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능력이나 혜택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혼자만 다른 언어권에 속해 있다는 단절의 증거였습니다.

가족들이 수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웃음을 나누는 장면에서, 보리는 그 흐름에 완전히 끼어들 수 없습니다. 말소리가 오가는 세계와 고요한 수어의 세계, 그 경계 어딘가에 홀로 서 있는 아이의 감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입니다. 보리는 가족을 위해 짜장면 배달 주문을 대신하고, 외부 세계와 가족 사이의 통역사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아왔습니다. 그 역할이 가족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리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이 가족과 다른 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외로움은 가족이 보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생겨난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는 보리를 깊이 아끼고 있었고, 동생 정우 역시 누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들을 수 있는 아이니까 혼자서도 잘할 것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전제가 보리의 감정을 서서히 지워가고 있었습니다. 보리가 느낀 외로움은 방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소통의 방식이 달랐기에 자연스럽게 쌓여간 감정의 공백이었습니다. 단오 날 불꽃놀이 행사에서 가족을 잃어버리고 홀로 군중 속에 서게 된 보리가 가장 큰 불꽃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던 장면은, 그 공백이 얼마나 오래되고 깊은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불꽃이 보리에게는 두려움과 슬픔의 기억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가 품어온 외로움의 무게를 더욱 실감하게 만듭니다. 어른들이 조금만 더 일찍 그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이후의 위험한 선택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청각장애 가족이 마주하는 사회의 편견

〈나는 보리〉가 단순한 가족 성장 영화를 넘어 사회적 울림을 갖는 이유는, 청각장애인 가족이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편견과 차별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시장 장면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들리지 않는 척을 하며 엄마와 시장 나들이에 나선 보리는, 점원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모녀를 향해 막말을 던지고 바가지를 씌우는 모습을 그대로 경험합니다. 상대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이루어지는 이 행동은, 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의 시선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말이나 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판단력과 감정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의 일부는 청각장애인이 자신의 언어를 인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의적 전제를 품고 행동합니다. 영화 속 정직한 엄마가 더 받게 된 거스름돈을 돌려주려는 장면은, 그 편견이 얼마나 일방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차별을 행하는 측이 상대의 능력과 도덕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을 뿐, 실제로는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동생 정우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리는 정우가 날 때부터 청력은 없었지만 축구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척을 통해 생활하면서, 보리는 자신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을 정우가 이미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또래 집단 안에서 경험하는 소외는, 악의적 괴롭힘보다도 더 은밀하고 지속적인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는 이를 과장하거나 드라마틱하게 그리지 않고, 아이들의 시선 속에 담담하게 녹여냅니다.

한편, 보리가 들리지 않는 척하며 가족의 삶을 체험하는 설정은 장애 이해 교육의 측면에서 조심스럽게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잠깐의 경험이 청각장애인의 삶 전체를 이해했다는 착각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목적은 체험을 통한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의 일상을 보리의 눈으로 비로소 마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 설정은 공감의 출발점으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가족 소통의 본질, 같아지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것

영화 제목 〈나는 보리〉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 보리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기도 하고, 보리가 난다는 계절의 감각이기도 하며, 수어 중심의 가족 안에서 본다는 행위가 갖는 중요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감독 김진욱은 처음에 영문 제목을 'I See'로 구상했을 만큼, 보는 행위는 이 영화의 핵심 언어입니다. 보리의 가족들은 주로 수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곧 대화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보는 행위가 단순히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과 상황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보리가 피자와 치킨도 포기할 만큼 진지하게 소리를 잃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히 불편함을 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족과 완전히 같아지면 비로소 그 안에 완전히 속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TV 속에서 발견한 청력 상실 방법으로 이어지고, 매일같이 세숫대야에 얼굴을 담그고 급기야 바다에 빠지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이 행동은 단순히 철없는 장난이 아니라, 오랫동안 해소되지 못한 외로움이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같은 장애를 갖는 것이 가족 소통의 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족과 같은 장애가 있어야만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며, 서로 다른 상태를 인정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영화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보리는 들리지 않는 척하는 과정을 통해 동생 정우와 부모가 겪는 불편과 차별을 직접 알게 되고, 그동안 미처 몰랐던 부모의 진심을 깨닫습니다. 이는 보리가 그들과 완전히 같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비로소 그들의 세계를 진심으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불편하고 외로운지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보리가 궁극적으로 깨달아야 할 것, 그리고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려는 것은 바로 그 시선의 변화입니다. 수어 가족 안의 보리가 결국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청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자신을 바라봐 주는 것, 그리고 자신 또한 가족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나는 보리〉는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오래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보리와 정우, 두 아이 모두 자신의 조건이 아니라 편견과 소통 부족으로 힘들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대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진짜 가족이자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임을 이 영화는 11살 소녀의 눈으로 담담하게 증명합니다.


[출처]
영상 채널: 너의 이름은(영화 리뷰) / https://www.youtube.com/watch?v=_YkxL3jY3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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