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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재자 (국가폭력, 정체성상실, 부성애)

by sign3139 2026. 8. 5.

영화 나의 독재자 포스터 사진

가족과 오랫동안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거리가 너무 당연해져서 좁히는 방법조차 잊게 됩니다. 저도 그런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영화 <나의 독재자>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국가 권력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어떻게 빼앗는지,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국가폭력이 만들어낸 정체성 상실

성근은 8년째 극단에 몸담은 무명배우입니다. 가족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별 볼 일 없는 단역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그에게 연극과 교수의 오디션 제안은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이 군부대였습니다. 고문을 견디고 나서 들은 말이 "오디션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이었죠. 그 장면에서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72년 7월 4일 남북 공동성명 직후입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극비리에 혹시 있을지 모를 남북 정상회담을 대비해 김일성 대역을 필요로 했고, 성근이 그 역할에 낙점됩니다. 이른바 페르소나 훈련(persona training), 즉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인물로 대체하는 훈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서 페르소나 훈련이란 특정 인물의 언어, 사상, 행동 방식을 그대로 이식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성대모사부터 사상 교육, 외모 변형까지 총동원됐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무섭게 느꼈던 대목은 바로 이 과정이 폭력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국가는 성근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고문을 견뎌낸 그의 침묵이 오히려 합격 기준이 됐으니, 처음부터 그는 도구로 선발된 셈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필요가 사라진 뒤, 그는 아무런 후속 조치 없이 버려집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와 유사한 상태입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란 극심한 심리적 외상으로 인해 자아가 분리되어 복수의 정체성이 공존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근이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자신을 수령으로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가한 심리적 폭력의 결과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출처: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자료에 따르면, 지속적인 심리적 외상은 현실 인식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자아 형성 시기에 강제적 역할 부여가 이루어질 때 더욱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고발하면서도, 성근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훈련 과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느꼈을 것입니다. 무명배우에게 "지상 최고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말은 비록 강요였지만,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받은 진지한 평가였으니까요. 그 점이 저는 더 슬펐습니다.

  • 1972년 7월 4일 남북 공동성명: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극비 방북 결과로 발표된 남북 최초 공동성명
  • 성명 이후 남측에서는 10월 유신 헌법이 선포되어 개헌의 명분으로 활용됨
  • 영화는 이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국가 권력이 개인을 소모품으로 다루는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
  • 성근에게 가해진 고문과 사상 교육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인권 침해
요약: 국가 권력은 성근을 김일성 대역으로 만들기 위해 고문과 사상 교육을 동원했고, 그 결과 그는 수십 년간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부성애와 화해, 그리고 뒤늦은 이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정치 스릴러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20여 년이 흐른 1994년, 다단계 업체의 설계자로 살아가는 아들 태식은 가족도 잊은 채 돈을 좇고 돈에 쫓기는 신세입니다. 아버지의 인감을 찾아 나서는 이유도 처음에는 분당의 집을 처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도 한때 가족에게 필요한 말만 주고받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게 자기 보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냥 상처를 외면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태식이 처음에 아버지를 이용하려 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원망이 깊을수록 감정을 차단하고 실용적인 이유를 앞세우게 되는 것이죠.

태식이 나중에 알게 되는 진실은 더 아팠습니다. 성근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망쳤던 그 리어왕 연기를 언젠가는 멋지게 보여주겠다는 집착으로 수십 년을 버텨왔던 겁니다. 부성애(paternal love)가 이렇게 뒤틀린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오해를 낳는지를 영화는 매우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부성애란 단순히 자식을 향한 사랑을 넘어, 아버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와 얽히는 복잡한 감정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회담 장면에서 성근은 준비된 대본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권력자 앞에서 비위를 맞추는 대신, 자신의 연기를 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성근이 완전히 망가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우로서의 자존심,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무언가가 그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국가 폭력이 그의 이성을 빼앗았을지 몰라도, 그 핵심만은 끝까지 건드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가족 사이의 상처는 상대방이 일부러 나를 외면해서 생기는 경우보다, 각자의 힘든 상황을 감당하지 못해 표현하지 못했던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가족의 사정을 듣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미워하기만 했던 마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미움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게 되었죠.

태식과 성근도 결국 그 지점에 다다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왜 그 역할에 집착했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는 평생 기다려온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아들 앞에 섭니다. 출처: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의 관계에서 발생한 심리적 외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대인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두 남자의 이야기로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담아냈습니다.

요약: 성근의 집착 안에는 아들에게 멋진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었던 부성애가 있었고, 태식은 그 진실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나의 독재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직접적인 실화는 아니지만, 1972년 7월 4일 남북 공동성명과 이후 선포된 10월 유신 헌법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극비 대북 공작을 펼쳤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간 한 개인의 가상 이야기를 통해 국가 권력의 민낯을 그려냅니다.

 

Q. 성근은 진짜 정신이상자인가요, 아니면 연기를 계속한 건가요?

A. 영화는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립니다. 마지막 회담 장면에서 성근은 대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기하는데, 이는 그가 완전히 현실 인식 능력을 잃지 않았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국가 폭력에 의한 심리적 외상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배우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행위로 읽히는 장면입니다.

 

Q. 아들 태식이 처음에 아버지에게 접근한 이유가 뭔가요?

A. 태식은 아버지가 사둔 분당의 집을 처분하기 위해 인감을 찾으러 접근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감정보다 실리가 앞섰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그 동기는 점차 달라지고, 마지막에는 아들로서 아버지 곁에 남게 됩니다.

 

Q. 10월 유신과 남북 공동성명은 어떤 관계인가요?

A. 영화 속 허 교수는 남북 공동성명이 개헌의 명분이었다고 말합니다. 성명 발표 이후 북에서는 사회주의 헌법이, 남에서는 10월 유신 헌법이 선포됐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당시 박정희 정권이 남북 대화 분위기를 이용해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합니다. 영화는 그 구조를 "연극"이라는 메타포로 설명합니다.

 

결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성근이 미치광이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통째로 바꿔놓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됐다는 것이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제 경험을 돌아봐도, 가족 사이의 긴 침묵은 대부분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말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으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성근이 평생 아들에게 멋진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사실을 태식이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두 사람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서로를 미워하며 보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본 뒤로 저도 서운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피하기보다 차분하게 이야기하려고 더 의식하게 됐습니다. 이 영화가 권력 비판에서 출발해 결국 가장 개인적인 질문으로 끝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berekhdF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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