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소희 (현장실습, 취업률, 책임전가)
2023년 개봉한 독립영화 「다음 소희」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청소년 현장실습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밝고 당당했던 한 소녀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무너져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고등학생 실습생이 마주한 현장실습의 민낯
영화 속 소희는 애완동물 관리과에 재학 중인 여고생으로,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또래 소녀들과 다를 바 없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녀가 담임 교사의 권유로 대기업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가게 됩니다. 전공과 전혀 무관한 업종이었지만, '대기업 사무직'이라는 말에 기대를 품고 출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콜센터는 타 지점 대비 실적이 가장 낮은 곳이었고, 분위기는 처음부터 살벌했습니다. 소희는 팀장 이준호의 지도 아래 고객 응대 멘트를 외우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됩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희롱 상황도 직접 마주하게 됩니다. 첫 월급날에는 계산한 금액보다 훨씬 적은 돈이 통장에 찍혔고, 회사는 '수습기간'과 '인센티브 지급 기준'을 내세우며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현장실습 제도의 핵심적인 모순이 드러납니다. 실습생이라는 신분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면서도, 성과에 대한 압박은 정규 직원과 동일하게 부과되는 구조입니다. 소희는 결국 실적 1위까지 기록하는 성과를 냈지만, 회사는 각종 규정과 조건을 이유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인센티브는 바로 안 나온다", "그만두면 못 받는다"는 말은, 사실상 실습생을 묶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에 다름없습니다.
현장실습 제도가 본래 추구해야 할 목적은 학생이 현장에서 직업 역량을 익히는 교육적 경험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대체가 쉽고 임금이 적게 드는 실습생을 대량으로 투입해 실적을 채우는 구조, 그리고 그 실습생이 소진되면 다시 새로운 실습생으로 교체하는 순환이 반복됩니다. 소희가 동료로부터 "여기 싹 다 실습생이래, 그만둬도 바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이 구조의 본질이 모두 드러납니다. 실습생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취업률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진 학교의 역할
소희가 전공과 무관한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가게 된 출발점은 학교였습니다. 담임은 대기업에서 자리가 났다며 소희에게 콜센터 면접을 권유했고, 소희는 그 말을 믿고 면접에 응했습니다. 영화는 이 선택이 순수한 교육적 판단이 아니라, 취업률이라는 숫자를 채우기 위한 결정에 가까웠음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유진 형사가 교육청과 학교를 조사하면서 그 구조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특성화고의 경우 졸업생 취업률이 교육청 예산 배정과 직결됩니다. 취업률이 떨어지면 예산이 줄고, 심한 경우 학교 운영 자체가 위태로워집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학교가 실습 기관의 질이나 학생의 적성보다 '일단 취업시키는 것'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구조적으로 예견된 결과입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애완동물과를 하고 싶어서 갔겠습니까, 사료 공장이든 비료 공장이든 찾는 대로 보내는 수밖에요"라는 말은 충격적이지만, 그것이 현실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소희가 회사에서 갈등을 일으킨 후 담임에게 불려갔을 때, 담임은 왜 힘들었는지 묻기보다 "학교에 미치는 데미지", "후배들 앞길"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소희의 고통보다 학교의 평판과 실습 자리 유지가 우선순위였던 것입니다. 이는 학교가 학생을 보호하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인력 공급처처럼 기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학생이 현장실습 중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학교는 가장 먼저 그 학생 편에 서야 합니다. 현장실습 기관이 노동관계법을 위반하고 있지는 않은지, 학생의 신체적·정신적 안전이 보장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입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희의 경우 학교는 이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취업률이라는 수치 뒤에 실제 학생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외면한 결과가, 영화가 담아낸 비극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구조적 책임전가와 끊어지지 않는 악순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유진 형사가 진실을 하나씩 밝혀나감에도 불구하고, 회사, 학교, 교육청 어느 누구도 "내 탓"이라고 말하지 않는 장면입니다. 회사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야근했다"고 말하고, 학교는 "취업률이 안 나오면 어쩌겠냐"고 말하며, 교육청 장학사는 "일개 지방교육청 장학사가 무슨 힘이 있냐"고 반문합니다. 소희의 죽음 앞에서도 책임은 끊임없이 다음 단계로 넘겨집니다.
전 팀장 이준호의 죽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실적 압박을 가한 가해자였지만, 동시에 더 위로부터 내려오는 구조적 압박 속에서 고통받던 피해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유서에는 회사의 갑질에 대한 내부고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관리자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로 산업재해 인정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이 구조 속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이 그대로 아래로 전달되는 메커니즘이 반복됩니다.
이 악순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영화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단일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고통의 최종적인 수신자가 언제나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 즉 아무런 협상력도 없는 고등학생 실습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소희가 각서에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 압박의 끝자락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행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은 2016년 현장실습 중 사망한 학생의 사례를 포함한 여러 실제 사건들을 참고해 만들어졌으며, 이후 현장실습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변화가 현장까지 실질적으로 도달하는 데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며, 취업률 중심의 교육 평가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유사한 구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어"라는 유진 형사의 말은, 단순한 영화 속 대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현실 진단입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재미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러나 꼭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소희의 죽음 앞에서 회사, 학교, 교육청 모두 책임을 회피한 구조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였습니다. 이 영화는 청소년 현장실습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불편하고 무거운 진실을 담고 있으며,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출처]
영상 채널: 띵잘 / https://www.youtube.com/watch?v=V_4vPrzmm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