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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다 (구조조정, 자기합리화, 이병헌)

by sign3139 2026. 8. 26.

저도 처음엔 그냥 이병헌 주연의 블랙코미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는 순간, 웃었던 장면들이 하나씩 다시 떠오르면서 전혀 웃기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더 액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갑작스러운 구조조정 이후 무너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실직 영화라고 하면 눈물과 감동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 기대를 보기 좋게 비틀어 버립니다.



구조조정이라는 도끼질, 제가 실감한 이유

영화는 한 가족이 넓은 마당에서 바베큐를 즐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안정된 직장, 아름다운 아내, 아들과 딸, 반려견까지. 유만수라는 인물이 누리는 삶은 많은 중년 남성들이 상상하는 완성형 그림입니다. 그런데 20년 넘게 몸담았던 태양제지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인수되면서 그 그림이 하루아침에 찢겨 나갑니다.

여기서 영화가 사용하는 장치가 인상적입니다. 미국 본사 측 인사가 "미국에서는 해고를 도끼질이라고 한다"며 담담하게 통보를 건네는 장면인데, 해고(layoff)란 단어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 행위인지를 이 한 줄 대사로 압축해 보여줍니다. 해고란 단순히 계약 종료가 아니라, 그 사람이 쌓아온 커리어와 정체성을 한 번에 잘라내는 행위라는 뜻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 역시 쿠팡에서 상품을 판매하며 매출을 만들어 가던 중, 판매 계정이 갑자기 정지되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소싱에 투자한 비용과 시간이 있었고, 광고비도 계속 집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순간 느꼈던 감각이 영화 속 만수의 표정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일반적으로 열심히 하면 무언가 쌓인다고 믿게 되는데, 제 경험상 그 쌓임이 외부 변수 하나에 순식간에 증발할 수 있다는 현실은 꽤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는 이 충격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만수 부친의 이야기로 한 번 더 은유합니다. 사회가 필요할 때 역할을 부여하고, 필요가 사라지면 조용히 버린다는 구조가 세대를 넘어 반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죠. 출처: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장기 근속자일수록 구조조정 이후 재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더 길고 임금 손실 폭도 크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만수가 20년 경력에도 불구하고 면접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장면은 그래서 더 리얼하게 다가옵니다.

요약: 구조조정은 단순한 계약 해지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통째로 흔드는 사건이며, 영화는 이를 날카롭고 실감 나게 포착합니다.

 

자기합리화라는 주문, "어쩔 수가 없다"의 이중성

영화의 제목이자 가장 반복되는 대사인 "어쩔 수가 없다"는 처음엔 그냥 하소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지 추적하다 보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미국 본사도 해고를 통보하며 이 말을 쓰고, 만수도 살인을 앞두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이 말을 씁니다. 나중엔 새 고용주조차 AI 자동화 도입을 정당화하며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이 반복 구조가 바로 영화의 핵심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대사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의 언어적 표현입니다. 여기서 인지 부조화란 자신의 행동과 가치관이 충돌할 때 그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행동을 정당화하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만수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타인을 제거하는 행위를 정당화해야 하기에, 이 주문을 멈추지 못합니다.

제가 직접 느껴봤는데, 사업이 막혔을 때 "어쩔 수 없어서 이렇게 했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쉬운 합리화인지 압니다. 집을 팔 수도 있었고, 아내의 커리어를 살릴 수도 있었고, 생활 수준을 낮출 수도 있었습니다. 만수가 그 선택들을 외면한 건 현실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누리던 삶의 형태를 포기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건 결국 "어쩔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만수가 허위 구인 광고를 내고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수집해 등급을 매기는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웃깁니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 남는 감각은 불편함입니다. 경쟁자로 설정된 구범모, 고시조, 최선출 역시 모두 수십 년 제지업계에서 일한, 각자의 방식으로 간신히 버티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자리를 놓고 인간끼리 서로를 밀어내야 하는 구조 자체가 만수보다 훨씬 더 잔인해 보였습니다.

  • "어쩔 수가 없다"는 미국 본사, 만수, 신임 고용주 모두가 공유하는 합리화의 언어
  •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주문처럼 반복되며, 갈수록 공허하게 울림
  • 만수의 경쟁자들도 동일하게 취약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시스템의 잔혹함이 부각됨
  • 집 매각, 업종 전환 등 선택지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음"은 거짓
요약: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은 자기합리화의 주문이자 위선적 언어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중적 기호로 작동합니다.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보통 배우가 훌륭하다는 말은 "연기를 잘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 영화에서 이병헌의 역할은 그 이상입니다. 유만수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병헌의 특정 페르소나, 즉 카리스마 있고 단단해 보이는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전제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미지를 내부에서 서서히 무너뜨리는 과정이 곧 이 영화의 서사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화면 안에 배치되는 배우, 조명, 세트, 카메라 구도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건축 공간 자체를 이 미장센의 핵심 재료로 씁니다. 건축학 교수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그의 영화에서, 만수가 탐내는 세 남자의 저택은 각각 중년 남성의 욕망, 억눌린 비밀, 과시욕을 공간으로 구현합니다. 그 공간이 침범당하거나 폭로의 무대가 되는 방식이 이야기 자체가 됩니다.

손예진이 연기한 아내 미리도 단순한 조력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인 결단을 내리는 인물입니다.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라고 말하는 만수와 대조적으로, 미리는 현실을 직시하는 쪽입니다. 그 대비가 영화의 정서적 긴장을 유지하는 축입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뒤 뉴욕 영화제로 이어진 이 작품은(출처: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최선출과의 음주 장면, 구범모 내외와의 몸싸움 장면, 고시조와의 조용한 대화 장면 등에서 박찬욱 특유의 정밀한 연출이 빛납니다. 각 장면에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같은 음악 선택까지, 어디에 무엇을 배치할지 정확히 아는 감독의 손맛이 느껴집니다. 제가 직접 스크린에서 확인했는데, 스타일리시함과 정서적 타격이 동시에 오는 장면들이 이렇게 촘촘하게 배치된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요약: 이병헌의 캐리어 정점 연기와 박찬욱의 미장센이 결합하여, 공간과 인물이 함께 이야기가 되는 드문 영화적 체험을 만들어 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원작이 따로 있나요?

A. 있습니다.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1997년에 발표한 소설 『더 액스(The Ax)』가 원작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이경미, 동명 작가 등과 함께 현대 한국 맥락에 맞게 각색한 작품으로, 원작의 뼈대는 유지하면서 구조조정과 AI 자동화라는 동시대적 요소를 더했습니다.

 

Q.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이 많은 영화인가요?

A. 일반적으로 박찬욱 영화라고 하면 극단적인 폭력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제 경험상 이 작품은 그 기대와 조금 다릅니다. 폭력이 없진 않지만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간접적이거나 우스꽝스럽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블랙코미디의 형식 안에 폭력이 배치되어 있어, 충격보다는 씁쓸함이 더 크게 남습니다.

 

Q. 이병헌 연기가 실제로 그렇게 잘하나요?

A. 제가 직접 스크린에서 확인했는데, 단순히 연기를 잘한다는 수준을 넘습니다. 이 영화의 유만수는 강해 보이다가 상황이 닥치면 가치없이 무너지는, 모순적인 캐릭터입니다. 그 모순을 자연스럽게 오가면서도 관객이 동기를 이해할 수 있는 선을 유지하는 것이 이 역할의 핵심인데, 이병헌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Q.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만수는 결국 원하던 직장을 얻습니다. 그러나 불 꺼져가는 공장에서 로봇이 종이를 옮기는 장면 옆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전혀 해피엔딩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원하던 것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었는가"이기 때문에, 결말의 쾌감보다 공허함이 훨씬 크게 남습니다.

 

결론

극장을 나오는 차 안에서 한참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웃었던 장면들을 다시 곱씹을수록, 그 웃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불편해졌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저 역시 얼마나 많은 선택을 외면해 왔는지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실직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직업과 돈으로 인간의 가치를 측정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입니다. 그리고 그 고발 앞에서 관객도 결국 자유롭지 않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전성기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확인하고 싶은 분이라면, 반드시 극장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스트리밍으로 보면 절반은 잃는 영화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7Yes279d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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