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담쟁이 리뷰 (가족의 의미, 사회적 약자, 퀴어영화)
2020년 10월 28일 개봉한 영화 〈담쟁이〉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온라인 상영 당시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한 화제작입니다. 한재희 감독의 이 작품은 오랜만에 만나는 수준 높은 퀴어 영화로, 동성 연인과 장애, 비전통적 가족이라는 주제를 따뜻하고 현실감 있게 풀어냅니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다 — 혈연과 제도를 넘어선 가족의 형태
영화 〈담쟁이〉는 동성 연인 은수와 예원이 처음부터 함께 살고 있는 연인으로 설정된 채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여느 퀴어영화와 다른 출발선을 가집니다. 이미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두 사람이 교통사고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객 앞에 던집니다.
은수는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걸을 수 없게 되고,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언니 은혜는 사망합니다. 졸지에 은혜의 일곱 살 딸 수민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은수는 자신이 예원에게 짐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스스로 관계를 끊으려 합니다. 이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감정선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은수의 선택이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상대방의 선택까지 대신 결정해 버리는 행동은 오히려 예원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좋은 상황에서만 함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와 경제적 어려움,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관계의 무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원은 시종일관 "괜찮다"고 말합니다. 은수가 계속 밀어내고 모질게 굴어도, 그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손을 잡고 함께 오르자고 말해주는 예원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세 사람, 즉 은수와 예원 그리고 수민이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은 단순한 연인 관계를 넘어 이미 하나의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가족은 꼭 혈연이나 법적인 관계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끝까지 책임지고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가족을 만드는 본질이라는 것을 〈담쟁이〉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수민에게 필요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가정이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사람들입니다. 영화는 이 단순하고도 중요한 진실을 세 사람의 관계를 통해 천천히, 그러나 힘 있게 전달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현실 — 제도가 외면한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담쟁이〉가 단순한 러브스토리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퀴어영화이면서도 그 바깥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의 시선을 함께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보조 생활을 했던 은수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 장례식장에서 일을 돕는 예원을 향한 사람들의 수군거림, 수민이 살기에 양육 환경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회적 제도, 목욕탕을 나오면서 마주치는 동성애 반대 시위자까지. 영화는 이 모든 장면들을 통해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폭넓고 일상적으로 존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동성 연인이라는 이유로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은수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양육 능력까지 의심받는 상황은 관객으로 하여금 답답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아이를 사랑하고 돌볼 능력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의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관계를 무조건 불안정하다고 판단하는 것 역시 명백한 편견입니다. 아이의 복지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그 아이가 누구와 함께할 때 가장 안정되고 행복한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수민이가 보육원으로 보내지게 되는 과정이 지나치게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표현되어, 2020년의 현실에서 과연 저런 상황이 그대로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한재희 감독 본인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다소 극적으로 연출한 장면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아동의 의사와 생활환경, 보호자와의 관계를 충분히 조사하는 절차가 존재합니다. 영화 속 제도와 공무원들이 모두 차갑고 일방적인 존재처럼 묘사된 부분은 현실 복잡성을 다소 단순하게 처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면 작품의 현실성이 더욱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소수자와 약자를 제도적 사각지대로 내모는 현실을 가학적이지 않으면서 현실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시선과 이해하려 하지 않는 태도 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작아지고 약해지는지를 영화는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관객들이 은수와 예원이 멀어지는 모습을 단순히 사랑하는 연인이 이별하는 장면이 아닌, 하나의 가족이 해체되는 것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연출은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성취 중 하나입니다.
퀴어영화로서의 완성도 — 마니아와 일반 관객 모두를 향한 서사
영화 〈담쟁이〉는 2016년 이상이 배우, 할유선형 배우가 출연했던 〈연애담〉 이후 거의 4년 만에 등장한 여성 서사의 독립 퀴어영화입니다. 올해 초 개봉했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아가씨〉 같은 작품들만 보더라도 퀴어영화의 마니아층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상황에서, 〈담쟁이〉는 그 오랜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마니아층과 일반 관객 양쪽 모두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작품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은수와 예원이 처음부터 함께 살고 있는 연인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동성 관계가 시작되는 과정보다 이미 형성된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지켜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 퀴어 서사인 동시에 가족주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 일반적인 동성애를 다룬 작품보다 훨씬 넓은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작품은 은수와 예원이 함께 목욕탕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각기 다른 시선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예원이 손을 잡으려 하자 은수가 재빨리 피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비교적 동성애에 개방적인 20대와 이에 여전히 소극적인 40대의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자연스럽게 표현됩니다. 이러한 디테일은 영화가 단순히 퀴어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 인물들의 감정과 고민을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은수가 수업 시간에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의 마지막 구절을 낭독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냅니다.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는 이 구절은, 서로 연결된 작은 존재들이 함께함으로써 거대한 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영화가 은수와 예원이 겪는 장애 이후의 재활 문제, 경제적 어려움, 돌봄 부담, 법적 보호자 자격 문제 등을 사랑과 용기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과제입니다. 이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떤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제도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함께 보여주었다면 작품의 깊이가 더욱 풍부해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쟁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완성도 높은 한국 퀴어 독립영화로서, 시장의 공백을 메우는 것 이상의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영화 〈담쟁이〉는 사랑, 장애, 비전통적 가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학적으로 전시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제도의 벽 앞에서 작아지는 사람들에게 혼자 벽을 넘게 내버려 두지 말고, 모두가 함께 담쟁이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사회 속에서,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첫 번째 용기가 되어줍니다.
[출처]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AHC3XjX6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