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어보는 완성까지 십수 년이 걸린 책이고, 척추골 수로 어종을 분류하는 방법은 19세기 후반에야 서구 학계에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정약전은 그보다 수십 년 앞서 이 방식을 이미 쓰고 있었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유배지 섬에서 그게 가능했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지식 콜라보 — 신분이 달랐던 두 사람이 만든 기록
저도 예전에 저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배운 경험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학력도 달랐고, 일하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저는 자료와 수치를 먼저 챙겼고, 그 사람은 몸으로 익힌 감각을 더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제가 알던 지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그 사람이 단번에 해결하는 장면을 몇 번이나 목격하게 됐습니다.
영화 속 정약전과 창대의 관계가 딱 그랬습니다. 정약전은 성균관 출신의 사대부로 경학(經學), 즉 사서삼경을 중심으로 한 유교 고전 학문에 정통했지만, 흑산도 바다 생물에 관해서는 창대 앞에서 모르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창대는 상민 신분이었음에도 어류의 생태와 습성, 조리법까지 꿰고 있었습니다. 정약전이 "청어 등뼈가 몇 마디냐"고 묻자 창대가 "53마디"라고 즉답하는 장면은, 지식의 위계가 신분과 무관하다는 걸 가장 짧게 보여준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협업 방식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일종의 지식 교환이었습니다. 정약전이 먼저 제안한 말이 "내가 아는 것과 네 물고기 지식을 바꾸는 거다. 거래지, 도움이 아니다"였습니다. 이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실제 사실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 태도가 자산어보를 단순한 어류 목록이 아니라 살아있는 지식 체계로 만든 핵심이었다고 봅니다.
자산어보는 단순한 어종 분류서가 아닙니다. 어류, 패류, 조류(鳥類) 등 수산 생물을 세 권으로 나눠 기록했으며, 각 생물의 생김새와 습성뿐만 아니라 조리법, 민간 요법까지 집대성했습니다. "홍어 껍질을 뱀에 물린 데 붙이면 잘 낫는다", "대나무를 사용하면 기름이 그을려지지 않는다"는 식의 생활 밀착형 서술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이 나중에 동의보감(東醫寶鑑)과 함께 국가 중요 과학 기술 자료로 등재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출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제 경험상 가장 생산적인 협업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때가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인정할 때였습니다. 정약전이 창대의 경험 지식을 "쓸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먼저 말해준 순간이 그 시작점이었을 겁니다.
- 자산어보의 분류 체계: 어류·패류·조류를 해부 기반으로 정리, 서구의 척추골 분류법보다 수십 년 앞선 방식 사용
- 기록 범위: 생김새·습성·맛·조리법·민간 요법까지 포함한 실용 백과사전 성격
- 두 저자의 역할: 정약전(경학·문장 담당) + 창대(해양 생물 현장 지식 담당)의 비대칭 협업
- 등재 현황: 동의보감과 함께 국가 중요 과학 기술 자료로 공식 등재
실사구시 vs 입신양명 — 창대는 왜 떠났는가
영화에서 창대가 정약전을 떠나는 장면은, 처음 봤을 때는 배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그게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대는 상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림받다시피 했고,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과거(科擧), 즉 조선시대 관리 선발 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정약전이 꿈꾸는 "양반도 상놈도 없는 세상"은 분명히 옳은 방향이지만, 그 세상이 오기 전까지 창대 자신의 삶은 계속 천대받아야 합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향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저는 현실적인 성과를 먼저 챙기고 싶었습니다. 당시엔 그 생각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는데, 돌아보면 제가 처음에 그 일을 시작했던 이유 자체를 잊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대의 선택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건, 그 감각이 낯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리학(性理學)은 여기서 중요한 맥락을 제공합니다. 성리학이란 주자(朱子)가 집대성한 유교 철학으로, 조선 500년의 통치 이념이자 출세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창대가 열심히 읽은 책들이 결국 성리학 계열의 경전이었고, 그 책들을 읽어야만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정약전이 창대에게 "책을 읽는다고 씨가 나오는 줄 아느냐"고 말한 것은 이 구조를 비판한 것이지만, 창대 입장에서는 그 구조 안에서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습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자산어보 자료).
자산어보의 서문에는 실제로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었다.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다"는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영화의 창대는 허구가 아니라 자산어보에 실제 이름이 기록된 인물입니다. 역사 속 창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기록으로 확인이 어렵지만, 그의 지식이 책에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답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선택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흑백이기에 도달할 수 있는 깊이가 있다"고 했는데, 제가 직접 봤을 때 흑산도 바다와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치 수묵화 한 폭처럼 느껴졌습니다. 색이 없어서 오히려 두 인물의 표정과 말이 더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자산어보 창대는 실존 인물인가요?
A. 네, 실존 인물입니다. 자산어보 서문에 "장창대"라는 이름이 직접 등장하며, 정약전이 그를 지식 교류의 동반자로 언급했습니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두 사람이 어떻게 갈라섰는지는 역사 기록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Q. 자산어보는 현재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자산어보는 국립중앙도서관 및 주요 한국학 자료 기관에서 열람이 가능합니다. 동의보감과 함께 국가 중요 과학 기술 자료로 등재되어 있어 디지털 자료로도 일부 공개되어 있습니다. 원문은 한문으로 되어 있으며 번역본이 여러 종 출판되어 있습니다.
Q. 정약전이 정약용보다 덜 알려진 이유가 있나요?
A.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통치 이념과 직결된 저작을 남겼기 때문에 역사 교과서에서 더 자주 다뤄졌습니다. 반면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해양 생물학 서적이라는 성격상 대중적 인지도가 낮았습니다. 그러나 정약용 본인도 형 정약전을 학문적 멘토로 삼았으며, 그를 "범상치 않고 기걸하다"고 평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Q. 영화 자산어보에서 흑백 촬영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A. 이준익 감독은 "흑백이기에 도달할 수 있는 깊이가 있고, 촬영지였던 비금도 일대의 풍광을 운치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도 색을 걷어낸 화면이 두 인물의 관계를 더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결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정약전이 창대에게 처음 "거래"를 제안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르쳐 주겠다는 말도, 도와주겠다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내 것과 네 것을 바꾸자"는 말이었고, 그 말 하나가 두 사람의 관계 전체를 규정했다고 봅니다. 제가 경험해봤을 때도,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경우는 대부분 한쪽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자산어보가 의미 있는 이유는 유배지에서 완성된 책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름이 기록될 자격조차 없던 사람의 지식이 책 안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에도 그런 지식들은 여전히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면, 자산어보 번역본을 한 번 직접 펼쳐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물고기 이야기인데 사람 이야기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