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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 (정체성 억압, 민족 연대, 저항의 언어)

by sign3139 2026. 7. 30.

영화 항거 포스터 사진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말 한마디 못 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인 적, 저도 있습니다.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분위기가 무서워서 조용히 있었던 그 순간이요. 영화 <항거>의 한 장면을 보다가 그 기억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누군가 다가오면 딱 멈추는 개구리처럼, 그때의 제 모습이 딱 그랬습니다.



정체성 억압 — 말을 빼앗긴다는 것의 의미

영상 속에서 가장 먼저 귀에 꽂힌 건 "조선인은 일본말을 할 줄 안다"는 식의 강요였습니다. 단순히 다른 언어를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언어를 통째로 지워버리려는 시도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문화동화정책(文化同化政策), 즉 피지배 민족의 언어·이름·풍습을 지배 민족의 것으로 강제 교체하는 통치 방식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쉽게 말해, 당신이 누구인지를 잊게 만드는 정책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것과 말할 언어 자체를 빼앗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냥 눈치가 보여서 조용히 있었지만, 당시 조선인들은 모국어를 쓰는 것 자체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제가 느꼈던 불편함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 정책은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 이후 본격화됩니다. 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이 폐지되고,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통해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했습니다. 창씨개명이란 조선인의 성명을 일본식 씨명 체계로 교체하도록 강제한 제도로, 1940년 시행 당시 약 80% 이상이 개명을 신청했는데 이는 자발적 동의가 아닌 사실상의 강압이었다고 역사학계는 평가합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영상에서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라는 외침이 들렸을 때,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개구리는 누군가 다가오면 소리를 딱 멈추는 동물입니다. 감시받고, 주눅이 들고,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삼키는 존재. 그 비유가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도 한때는 그런 개구리였으니까요.

  • 문화동화정책: 피지배 민족의 언어·이름·풍습을 강제로 교체하는 식민 통치 방식
  • 창씨개명: 조선인의 성명을 일본식으로 강제 개명한 제도. 1940년 시행
  • 조선어 말살: 1938년 조선교육령 개정 이후 학교 내 조선어 수업 전면 폐지
  • 황민화정책: 조선인을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 한 일련의 동화 프로그램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
요약: 언어를 빼앗는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정체성 자체를 지우는 폭력이었으며, 당시 조선인들이 겪은 고통은 제도적·체계적 억압의 결과였습니다.

 

민족 연대 — 혼자였다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상의 후반부로 갈수록 장면 속 사람들이 혼자 외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용기를 얻는 구조로 이어집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아, 연대라는 게 이렇게 작동하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한 명이 목소리를 내면, 옆 사람도 따라서 낼 수 있게 됩니다.

민족 연대(民族連帶)란 같은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이 공통의 위기 앞에서 감정적·행동적으로 결속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것이 거창한 결의가 아니라, 옆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아주 작은 행위에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제가 과거에 혼자였을 때는 결국 침묵을 택했지만,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낸 자리에서는 저도 따라 말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아무 말도 못 했을 겁니다.

저항의 언어라는 개념도 여기서 다시 보입니다. 저항의 언어란 억압적인 권력 구조 안에서 피지배자가 자신의 존재와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 행위 전반을 가리킵니다. 말 한마디, 노래 한 소절, 자기 이름을 자기 말로 부르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목소리를 합치는 장면은 바로 이 저항의 언어가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난 순간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영화가 저항의 감동을 강하게 보여주는 만큼, 그 뒤에 따라왔을 처벌의 현실도 궁금했습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이 집단적 저항 행위를 할 경우 가혹한 고문과 독방 감금이 뒤따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출처: 독립기념관). 그럼에도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침묵하지 않은 용기는, 제가 그냥 눈치 보여서 조용히 있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선택이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돌아보면, 그때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단순히 미움받기 싫어서였습니다. 그 정도도 못 견뎌 침묵했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동시에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집니다.

요약: 연대는 거대한 결의가 아니라 옆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내는 아주 작은 행위에서 시작되며, 저항의 언어는 두려움을 알면서도 침묵하지 않는 선택에서 가장 강하게 빛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항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네,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가들의 옥중 저항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영상을 보면서 느낀 건, 극적인 연출보다 당시의 공간감과 억압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부분이 오히려 더 무겁게 와닿았다는 점입니다.

 

Q. 창씨개명을 거부한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A. 창씨개명을 거부할 경우 자녀의 학교 입학이 거부되거나 공공기관 업무 처리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사실상 생활 전반에서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법적 강제는 아니었지만 사회적·행정적 불이익을 통한 사실상의 강압이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평가입니다. 말 한마디가 아니라 생존 자체가 걸린 문제였던 셈입니다.

 

Q. 서대문형무소에서 실제로 집단 저항이 있었나요?

A. 기록에 따르면 수감자들이 만세를 부르거나 노래로 뜻을 모으는 형태의 저항이 있었고, 이에 대한 탄압도 매우 가혹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1920년 순국하기 전까지 독방에서 혹독한 처우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영상을 다시 보니, 장면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Q. 황민화정책이란 정확히 어떤 정책인가요?

A. 황민화정책이란 일본 제국이 조선인을 일왕에게 충성하는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일련의 동화 정책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창씨개명, 조선어 말살, 신사참배 강요, 징병제 도입 등이 모두 이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조선인의 정체성을 뿌리째 바꾸려 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결론

이 영상을 보고 나서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역사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롭게 말하고, 자기 이름을 자기 언어로 부르고,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침묵과 저항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 실감했습니다. 저도 앞으로는 눈치만 보다 조용히 넘기기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소리를 내보려 합니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냥 개구리처럼 멈추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요.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만 기억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지키려 했던 존엄과 자유의 의미를 지금 이 일상 속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게 제가 이 장면에서 가져온 가장 솔직한 결론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KvQ_Rhf8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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