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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리뷰 (욕망의 변질, 뱀파이어 윤리, 칸영화제)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그냥 한국판 뱀파이어 공포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기 전까지 계속 미뤘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전혀 다른 영화를 봤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2009년작 「박쥐」는 선한 의도로 출발한 한 인간이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뱀파이어라는 장르 문법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그 과정이 불편하면서도 어딘가 낯설지 않아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선한 출발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 배경과 맥락주인공 상현은 병원에서 일하는 신부입니다. 죽어가는 환자 곁에서 기도밖에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그는 스스로 생체 실험 대상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 출발점인데, 저는 이 장면에서 상현을 단순히 영웅적 인물로 읽기가 망설여졌습니다. .. 2026. 8. 30.
불신지옥 (신내림, 광신, 미스터리) 한 아이를 둘러싼 종교, 무속, 욕심이 겹겹이 쌓이다 결국 모두를 집어삼키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9년 개봉한 「불신지옥」 이야기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귀신 영화인지 인간 드라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 보고 난 후에도 한동안 그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습니다.신내림인가, 후유증인가 — 소진을 둘러싼 의문영화의 핵심은 소진이라는 아이입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처럼 깨어났지만, 그 이후로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발작을 일으키고,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게 됐으며, 병원은 엄마의 신앙 때문에 처음부터 배제됐습니다.여기서 제가 계속 의심하게 됐던 부분이 있습니다. 소진에게 실제로 신기(神氣), 즉 신령스러운 기운이 깃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2026. 8. 30.
지구를 지켜라 (트라우마, 외계인 망상, 블랙코미디) 살인범이 된 사람을 보면서 "이 사람도 피해자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나서 딱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당한 외계인 납치극으로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웃음이 멈추더라고요. 병구가 왜 저렇게 됐는지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황당한 납치극 뒤에 숨겨진 맥락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솔직히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대기업 사장 강만식을 외계인이라고 확신한 병구가 그를 납치해서 고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당하면서도 묘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영화가 단순한 블랙코미디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병구의 행동 뒤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가까운 심리 구조가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PTSD란 .. 2026. 8. 30.
김씨 표류기 (생존본능, 작은희망, 사회복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빚에 짓눌린 남자가 한강에 뛰어내렸다가 오히려 무인도에서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는 설정이 처음엔 그냥 블랙코미디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보다 보니 제가 한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시절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김씨 표류기」는 웃기는 척하면서 꽤 묵직한 걸 건드리는 영화입니다.생존본능 —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질기다일반적으로 극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은 무기력하게 무너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도 한때 돈도 안 되고 전망도 없는 일을 붙들고 있으면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막막할 때 오히려 손이 먼저 움직이더라고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영화 속 김씨가 딱 그랬습니다. 한강 한복판 밤섬에 .. 2026. 8. 29.
장화 홍련 (기억의 왜곡, 현실 혼란, 가족 갈등) 내가 기억하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다면 어떨까요? 저는 「장화, 홍련」을 보면서 그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멈칫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아무 말도 못 하고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수미가 보여주는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이 — 낯설면서도 —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거든요.기억의 왜곡 —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장화, 홍련」에서 수미는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계모 은주가 동생을 괴롭히고, 아버지는 그걸 외면한다고 믿죠. 그런데 영화가 전개될수록 그 '믿음' 자체가 흔들립니다. 이게 바로 영화가 정면으로 다루는 심리적 해리(dissociation)의 핵심입니다. 심리적 해리란 극심한 스트레스나 외상 경험 이후, 자신의 기억·감정·행동이 .. 2026. 8. 29.
택시운전사 (평범한 용기, 5.18, 김사복)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 집단 발포가 시작된 그날 총에 맞아 숨진 시민만 50명이 넘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제대로 마주했을 때 솔직히 말문이 막혔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그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 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태워다 준 택시기사 김사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2017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1,218만 명을 기록했고, 저는 그 숫자가 단순한 흥행 수치가 아니라 이 사건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라고 봤습니다.평범한 소시민이 역사의 목격자가 되기까지영화 속 만섭은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서울에 혼자 두고 온 딸 걱정, 밀린 월세 걱정이 전부인 평범한 택시기사입니다. 당시 1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요금에 혹해 광주행을 결심하는데, 이 10만.. 2026.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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