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13 사냥의 시간 (디스토피아, 추격 스릴러, 청춘 우정)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쫓기는 건 당연한 일일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냥의 시간〉은 경제 붕괴로 시스템이 무너진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도박장을 털고 도망치는 청년 네 명의 이야기를 담은 추격 스릴러입니다. 제70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될 만큼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은 작품인데, 막상 보고 나니 단순한 범죄 액션이라기보다 훨씬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영화였습니다.디스토피아 배경, 그게 단순한 설정일까영화의 세계관은 경제 파탄(economic collapse)으로 사회 인프라 전체가 붕괴된 근미래 대한민국입니다. 여기서 경제 파탄이란 단순히 불황을 넘어 화폐 가치가 사실상 소멸하고 공공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 상태를 말합니다. 극 중에서 원화는.. 2026. 8. 31. 독전 리뷰 (집착, 배신, 악역 연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한국 범죄 영화가 이 정도로 심리전을 파고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독전」을 다 보고 나서도 며칠 동안 '영락은 처음부터 원호를 이용한 것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자꾸 떠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비슷한 감정을 겪어봤기 때문입니다.집착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습니다영화 속 원호는 마약 조직의 보스 '이선생'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듭니다. 처음에는 형사로서 당연한 직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그 경계가 어느 순간 흐릿해집니다. 이건 직무가 아니라 집착(obsession)입니다. 여기서 집착이란 단순한 열정과는 달리, 목적보다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2026. 8. 31. 영화 마녀 (자윤 분석, 촬영비화, 연출의도)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한국판 슈퍼히어로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자윤이 마지막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2018년 박훈정 감독이 내놓은 영화 〈마녀〉는 그렇게 저에게 '사람은 절대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명제를 액션으로 증명해버린 작품이었습니다. 신인 김다미 배우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인체실험 윤리와 가족의 의미까지 건드리는 묵직한 문제작입니다.자윤이라는 캐릭터 —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돌려봤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윤은 처음 미스터 최와 마주치는 기차 시퀀스에서 이미 상대를 알아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감독이 직접 밝혔듯, 그 장면은 "자윤이 저 .. 2026. 8. 31. 박쥐 리뷰 (욕망의 변질, 뱀파이어 윤리, 칸영화제)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그냥 한국판 뱀파이어 공포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기 전까지 계속 미뤘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전혀 다른 영화를 봤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2009년작 「박쥐」는 선한 의도로 출발한 한 인간이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뱀파이어라는 장르 문법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그 과정이 불편하면서도 어딘가 낯설지 않아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선한 출발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 배경과 맥락주인공 상현은 병원에서 일하는 신부입니다. 죽어가는 환자 곁에서 기도밖에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그는 스스로 생체 실험 대상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 출발점인데, 저는 이 장면에서 상현을 단순히 영웅적 인물로 읽기가 망설여졌습니다. .. 2026. 8. 30. 불신지옥 (신내림, 광신, 미스터리) 한 아이를 둘러싼 종교, 무속, 욕심이 겹겹이 쌓이다 결국 모두를 집어삼키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9년 개봉한 「불신지옥」 이야기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귀신 영화인지 인간 드라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 보고 난 후에도 한동안 그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습니다.신내림인가, 후유증인가 — 소진을 둘러싼 의문영화의 핵심은 소진이라는 아이입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처럼 깨어났지만, 그 이후로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발작을 일으키고,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게 됐으며, 병원은 엄마의 신앙 때문에 처음부터 배제됐습니다.여기서 제가 계속 의심하게 됐던 부분이 있습니다. 소진에게 실제로 신기(神氣), 즉 신령스러운 기운이 깃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2026. 8. 30. 지구를 지켜라 (트라우마, 외계인 망상, 블랙코미디) 살인범이 된 사람을 보면서 "이 사람도 피해자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나서 딱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당한 외계인 납치극으로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웃음이 멈추더라고요. 병구가 왜 저렇게 됐는지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황당한 납치극 뒤에 숨겨진 맥락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솔직히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대기업 사장 강만식을 외계인이라고 확신한 병구가 그를 납치해서 고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당하면서도 묘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영화가 단순한 블랙코미디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병구의 행동 뒤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가까운 심리 구조가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PTSD란 .. 2026. 8. 30. 이전 1 ··· 4 5 6 7 8 9 10 ··· 5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