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1 어쩔 수가 없다 (구조조정, 자기합리화, 이병헌) 저도 처음엔 그냥 이병헌 주연의 블랙코미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는 순간, 웃었던 장면들이 하나씩 다시 떠오르면서 전혀 웃기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더 액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갑작스러운 구조조정 이후 무너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실직 영화라고 하면 눈물과 감동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 기대를 보기 좋게 비틀어 버립니다.구조조정이라는 도끼질, 제가 실감한 이유영화는 한 가족이 넓은 마당에서 바베큐를 즐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안정된 직장, 아름다운 아내, 아들과 딸, 반려견까지. 유만수라는 인물이 누리는 삶은 많은 중년 남성들이 상상하는 완성형 그림입니다. 그런데 20년.. 2026. 8. 26. 하얼빈 영화 리뷰 (안중근, 단지동맹, 이토 히로부미) 영화 「하얼빈」이 개봉 이틀 만에 누적 관객수 125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솔직히 이 숫자를 보고 나서야 극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이야기라면 학교 교과서에서 이미 결말을 알고 있으니 긴장감이 없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거든요. 직접 보고 나니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포로 석방 논쟁, 그리고 안중근이 선택한 만국공법영화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들었던 장면은 화려한 총격전이 아니었습니다.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가 끝난 직후, 부상당한 일본군 포로들을 앞에 두고 안중근이 내리는 선택이었습니다. 항복한 적병을 살려 돌려보내는 그 결정 앞에서 저는 솔직히 두 감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맞다'는 생각과 '저게 지금 상황에서 가능한 판단인가'라는 의문이 뒤섞였습니다.안중근이 내세.. 2026. 8. 26. 영화 소방관 (홍제동 참사, 처우 개선, PTSD) 2002년 홍제동 화재 참사. 소방관 여섯 명이 건물 붕괴와 함께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그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일하면서 안전 확인 한 번을 놓쳤다가 간담이 서늘했던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 영화'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실이 훨씬 더 무겁게 깔려 있었습니다.홍제동 참사 —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2002년 3월 4일 새벽 3시 47분, 서울 홍제동 빌라에서 화재 신고가 접수됩니다. 인근 소방서에서 소방차 20여 대와 소방관 46명이 출동했지만, 골목을 가득 메운 불법 주차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는 현장에 진입조차 못했습니다. 결국 대원들은 소방 호스를 손으로 들고 뛰어야 했습니다.오전 4시 11분, 노후 건물이 화염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내부에서 .. 2026. 8. 25. 좀비딸 (가족애, 장르 전복, 감염자 딜레마) 좀비 영화를 보면서 웃은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처음에 그게 가능한지 반신반의했습니다. 영화 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좀비가 자기 딸이라는 설정 하나로 장르 전체를 뒤집어 놓은 작품입니다. 누적 조회수 5억 뷰를 기록한 동명 웹툰이 원작이고, 2025년 7월 30일 극장 개봉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제가 시사 자료를 먼저 접했을 때 느낀 첫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묘한 안도감이었습니다.좀비 영화인데 왜 눈물이 날 것 같았을까 — 배경과 맥락기존 좀비 서사(Zombie Narrative)에서 감염자는 언제나 제거 대상입니다. 여기서 좀비 서사란 감염을 통한 인류 위협과 생존자의 공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도, 도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은 다릅니다. .. 2026. 8. 25. 영화 대가족 (혈연, 가족의미, 정자기증)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자 기증이라는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낸다기에 가볍게 보러 갔다가, 극장을 나오면서 한참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영화 《대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 그 과정을 아프도록 현실감 있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웃기다가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는 장면들이 제 예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황당한 설정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제가 처음 《대가족》의 줄거리를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과거에 수백 차례 정자 기증을 했던 의대생이 스님이 된 이후, 그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찾아온다는 설정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그 황당함이 도리어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영화의 배경이 되는 정자 기.. 2026. 8. 25. 킬링 로맨스 (배우 변신, 코믹 연기, 이선균 이하늬) 코미디 영화라고 해서 가볍게 봤다가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영화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가 딱 그랬습니다. 은퇴한 톱스타 여래가 억압적인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팬과 함께 '죽여주는 계획'을 모의한다는 설정인데, 저는 처음에 줄거리만 읽고 "설마 이게 영화가 되겠어?" 싶었습니다. 직접 보고 나서야 그 의심이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배우 변신: 이선균과 이하늬가 포기한 것들배우가 기존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깨는 연기를 업계에서는 탈이미지 연기(image-breaking performance)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대중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배우의 얼굴을 스스로 허무는 것인데, 이게 성공하면 배우 커리어의 전환점이 되고, 실패하면 그냥 "망가진 거 아닌가" 소리를 듣습니다.이선균이 이번에 시도한 건 .. 2026. 8. 24.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