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1 세 자매 (억압과 상처, 신앙의 민낯, 치유의 가능성)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먼저 꺼낸 적이 있습니까. 저는 꽤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가족 앞에서 울먹이는 대신 입술을 깨물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영화 를 보고 나서야 그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 거짓말이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 아래에서 자란 세 여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봉합하며 살아가는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등이 서늘했습니다.억압과 상처 — 세 자매가 각자 택한 생존 방식사람마다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이 영화만큼 또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첫째 희숙은 "미안합니다"와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삽니다. 암 선고를 받고도 괜찮다고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온 탓에, 이제는 도움을 요청하는.. 2026. 8. 8.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수남 연기, 재개발, 이정현)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 믿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그런데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얼마나 잔인한 위로였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정현이 연기한 수남이라는 인물은 그 믿음의 끝이 어디인지를 아주 정직하게 보여줍니다.수남의 성실함, 그리고 그 믿음의 균열일반적으로 성실하게 살면 보상이 따라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격증을 따고, 아끼고, 모으면 언젠가는 삶이 나아진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 공식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돈을 모으면 분명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막상 현실은 달랐습니다. 물가는 오르고, .. 2026. 8. 8. 소셜포비아 (익명성, 집단폭력, 온라인여론) 저도 처음엔 댓글 몇 개만 읽고 한 사람을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단정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사실이 달랐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뻘쭘함은 아직도 생각납니다. 영화 는 바로 그 경험을 스크린 위에 꺼내놓은 작품입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공격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한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줍니다.익명성 뒤에서 우리는 얼마나 달라지는가영화 에서 주인공 지웅은 처음에 악플러로 등장합니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평범한 청년이지만, 화면 너머에서는 주저 없이 레나에게 악플을 달고 신상 털기에 동참합니다. 저도 직접 경험해봤는데, 익명의 댓글창에서는 현실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쉽게 내뱉게 됩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언가를 해제시.. 2026. 8. 7. 영화 파수꾼 리뷰 (기태 심리, 관계 붕괴, 소통) 가까운 사람과 사소한 오해 하나를 그냥 넘겼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간 경험이 저한테도 있습니다. 영화 을 처음 봤을 때 스크린 속 기태와 희준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2011년 개봉한 윤성현 감독의 이 작품은 화려한 사건 없이도 세 친구의 시선과 침묵만으로 관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너무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기태 심리 — 폭력 뒤에 숨겨진 분리불안영화는 기태가 희준의 뺨을 아무런 예고 없이 갈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한 학교 폭력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기태가 휘두르는 폭력의 뿌리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기태는 어머니 없이 자랐습니다. 아버지와도 사실상 단절된 상태로,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 2026. 8. 7. 영화 시 (죄책감, 알츠하이머, 아네스의 노래) 저도 처음엔 이 영화가 단순히 시 쓰는 노인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며칠째 마음 한 켠이 불편하게 남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는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는 사람이 가장 잔인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이야기입니다. 손자의 죄, 피해자의 고통, 그리고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껴안은 한 여성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이 왜 용기 있는 사랑인지를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죄책감과 알츠하이머 사이에서가까운 사람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제 경험상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혼란이었습니다. "설마 내가 잘못 안 건 아닐까", "지금 이걸 알았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영화 속 미자가 처음 가해자 가.. 2026. 8. 7. 거인 (절박함, 생존, 어른의 책임)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정말 그 아이의 문제일까요? 2014년 독립영화 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 영재는 신발을 훔치고, 친구를 의심받도록 내버려 두고, 경찰에 신고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영재를 나쁜 아이라고 단정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사정이 너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절박함 — 꿈이 아닌 탈출구로서의 신부영화 속 영재는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처음엔 그냥 종교적 소명이겠거니 했는데, 사정을 알고 나면 그게 아니었습니다. 신부 양성 기숙학교에 들어가면 그룹홈 원장의 눈치를 볼 필요도, 지긋지긋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영재에게 신부라는 꿈은 성소(聖召), 즉 신으로부터 받은 부름이 아니라 현.. 2026. 8. 6.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