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11 영화 시 (죄책감, 알츠하이머, 아네스의 노래) 저도 처음엔 이 영화가 단순히 시 쓰는 노인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며칠째 마음 한 켠이 불편하게 남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는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는 사람이 가장 잔인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이야기입니다. 손자의 죄, 피해자의 고통, 그리고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껴안은 한 여성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이 왜 용기 있는 사랑인지를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죄책감과 알츠하이머 사이에서가까운 사람의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제 경험상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혼란이었습니다. "설마 내가 잘못 안 건 아닐까", "지금 이걸 알았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영화 속 미자가 처음 가해자 가.. 2026. 8. 7. 거인 (절박함, 생존, 어른의 책임)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정말 그 아이의 문제일까요? 2014년 독립영화 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 영재는 신발을 훔치고, 친구를 의심받도록 내버려 두고, 경찰에 신고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영재를 나쁜 아이라고 단정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사정이 너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절박함 — 꿈이 아닌 탈출구로서의 신부영화 속 영재는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처음엔 그냥 종교적 소명이겠거니 했는데, 사정을 알고 나면 그게 아니었습니다. 신부 양성 기숙학교에 들어가면 그룹홈 원장의 눈치를 볼 필요도, 지긋지긋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영재에게 신부라는 꿈은 성소(聖召), 즉 신으로부터 받은 부름이 아니라 현.. 2026. 8. 6. 내 깡패 같은 애인 (취업난, 인간적 유대, 사회적 약자)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저는 습관처럼 '내가 부족해서'라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게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제 문제인 것처럼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은 그 감각을 정확하게 건드립니다. 취업난 속에서 무너져 가는 한 여자와, 거칠지만 누구보다 진심 어린 깡패 남자의 이야기입니다.취업난이라는 현실, 영화는 어디까지 담았나영화 속 한세진은 회사 부도 이후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하며 연달아 면접을 보지만 계속 낙방합니다. 지방대 출신에 경력 3개월이 전부라는 이유로 면접관에게 제대로 된 질문조차 받지 못하고, 급기야 노래와 춤을 강요받는 장면까지 등장합니다.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속이 불편했던 건 단순한 공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 2026. 8. 6. 1번가의 기적 (첫인상, 재개발, 인간변화) 처음 만났을 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믿음직한 존재가 된 경험, 저는 분명히 있습니다. 2007년 윤제균 감독의 영화 은 바로 그 감각을 스크린 위에 올려놓은 작품입니다. 달동네 철거를 밀어붙이던 건달이 아이들과 한 여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인데, 웃다가 멈추게 되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첫인상만으로 사람을 재단했던 제 이야기말투가 거칠고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식으로 사람을 빠르게 분류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처음 만난 선배가 딱 그런 타입이었는데, 첫 대화에서 퉁명스럽게 대답을 들었을 때 '이 사람과는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래 함께 일하다 보니, 그 사람은.. 2026. 8. 6. 선생 김봉두 (인물분석, 교육변화, 성장서사) 나쁜 선생이 좋은 선생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요.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김봉두라는 인물이 도대체 왜 선생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장면은 하필 그 인물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003년 개봉한 영화 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닙니다. 선생과 학생 사이의 진짜 관계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뒤틀린 방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김봉두라는 인물, 나쁜 교사의 해부학교사의 직업 윤리(professional ethic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직업 윤리란 특정 직군이 마땅히 따라야 할 행동 기준과 가치관을 의미하는데, 영화 속 김봉두는 이 기준을 거의 모든 항목에서 위반합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자습만 시키고, 학부모로부.. 2026. 8. 5. 나의 독재자 (국가폭력, 정체성상실, 부성애) 가족과 오랫동안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거리가 너무 당연해져서 좁히는 방법조차 잊게 됩니다. 저도 그런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영화 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국가 권력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어떻게 빼앗는지,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정면으로 다룹니다.국가폭력이 만들어낸 정체성 상실성근은 8년째 극단에 몸담은 무명배우입니다. 가족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별 볼 일 없는 단역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그에게 연극과 교수의 오디션 제안은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이 군부대였습니다. 고문을 견디고 나서 들은 말이 "오디션 합격을 축하한다"는.. 2026. 8. 5.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52 다음